교육과정-수업-평가-기록 한 줄로 꿰자

   
▲ 충북 세명고 동아리 학생들과 교사들이 '대동여지도 따라 문학·역사·지리 여행‘을 실시했다. [사진 제공=충북교육청]

오해는 풀어야 하지 않은가.
교육과정-수업-평가-기록의 일체화가 필요하다고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특히 고등학교에서 높은 관심을 보인다. 이제는 교육부도 연수에 강좌 명으로 사용할 정도이다. 전국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 내용으로 강의를 한다. 하지만 산이 높으면 그늘도 깊은 법이다.

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다. 하나는 ‘교육과정-수업-평가-기록의 일체화를 하면 학생부종합전형에 유리한가?’이고 또 하나는 ‘평가와 기록을 일체화하다 보니 오히려 교육과정, 수업이 경직되지 않나?’라는 것이다.

   
▲ 김덕년 장학사 (경기도교육청)

첫 번째 물음의 답은 ‘잘 모르겠다.’이다. 다만 질문을 이렇게 바꾸면 거기에는 강하게 긍정의 대답을 할 수 있다. 학생부종합전형을 준비하려면 교육과정-수업-평가-기록의 일체화를 해야 하는가? 그렇다.

이유는 간단하다. 학생부종합전형이 평가요소로 삼고 있는 것은 주로 ‘학업역량, 학업태도, 개인적 소양’이고 이를 찾아낼 수 있는 서류는 학교생활기록부와 자기소개서이기 때문이다.

대학은 학교생활기록부와 자기소개서를 통해 학생이 고교 재학 기간 중 무엇을 했는가, 어떻게 성장했는가를 살핀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일주일 동안 평균적으로 34시간(50분 수업 기준) 정도를 이수한다. 34시간 중 교과 수업이 30시간이고 창의적 체험활동이 4시간이다. 30시간 정도의 교과수업 시간에 무엇을 했는가에 따라 학업역량이 좌우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데, 학교에서는 정규교과를 손대지 못하고 자꾸만 방과후 학습시간이나 창의적 체험활동에서 여러 활동을 더하려고 한다. 아이들이나 교사들이 열심히 하는 학교는 대체로 방과 후에 더 바쁜 모습을 보인다.

정규 수업 시간에 학생들이 활동하고, 정규 수업 시간에 평가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 모습을 기록으로 남겨야 하고, 대신 방과 후 시간에는 학생들이 스스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독서를 통해 자신의 호기심을 충족하고, 봉사활동이나 취미활동 등을 통해 삶을 더 깊게, 넓게 준비해야 한다.

교육과정 일체화는 개별 교육활동을 한 줄로 연결하는 것
두 번째 질문을 들으면서 참 답답했다. 교육과정-수업-평가-기록의 일체화 교사동아리는 일체화의 개념을 ‘성취기준을 중심으로 재구성한 교과 교육과정으로 학생중심수업을 실천하고, 수업 중 학생의 활동을 관찰·평가한 후, 성장 중심으로 학생부에 누가 기록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교육과정과 수업, 평가와 기록이 교육활동의 과정으로 연결이 되어 있을 뿐이다.

이를 경직화라고 한다면 그동안 별개로 이루어진 수업과 평가 활동 습관 탓이 크다. 게다가 학생부기록도 평소 활동을 누가 기록하기보다는 기록을 억지로 수업과 연결하여 쓰라는 의미로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높다.

교육과정-수업-평가-기록의 일체화는 수업에 집중하기 위한 방법이다. 교사들이 교실에서 하는 교육활동은 수업이고, 평가이며 기록이다. 이를 담아내는 틀이 교육과정이다. 일체화는 이러한 개별의 교육활동을 한 줄로 연결하자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 교육 현장에서 많은 교사들이 노력하여 다양한 수업의 기법이 도입됐고, 평가의 객관성도 높아졌다. 더구나 학생부종합전형의 확대로 학교생활기록부가 중요해짐에 따라 기록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각각의 활동을 통해 학교는 분명 달라지고 있음을 느낀다.

교과교육과정을 성취기준을 중심으로 재구성하는 것이나 수업을 학생중심으로 실천하는 것, 그리고 수업 중에 학생의 활동을 관찰, 평가해야 가능한 과정중심평가를 해야 하며, 이러한 교육활동 전반을 학교생활기록부에 누가기록해야 한다는 것은 교사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미 하고 있던 것인데 새삼스럽게 왜 ‘일체화’를 말 하냐고 반문할 만하다.

문제는 이 모든 활동이 ‘따로 국밥’이었다는 사실이다.
교육과정이나 수업, 평가와 기록이 모두 겉돌아 아직도 교사들에게는 ‘일’로 다가간다. 학기 초에는 교육과정을 수립하고 문건으로 만든다. 일부 교사들은 교육과정은 아예 생각지도 못한다. 그냥 한 해 교과서 진도 나갈 생각에 골몰하거나, 아니면 효과적으로 문제 풀이를 할 계획을 세운다. 아예 시중의 문제집 가운데 하나를 정해 그것으로 진도를 나간다. EBS 문제집도 시중 문제집 중 하나이다. 아무리 수능과 연계된다고 하지만 문제집은 문제집일 뿐이다.

이러니 평가는 수업과 전혀 상관없는 교육활동이 된다. 수업 시간에 적극 참여하지 않아도 문제집을 열심히 푼 학생이라면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수업과 평가는 별개가 된다. 문제집의 문제를 살짝 바꾸어 출제하면 되는데 굳이 서술형, 논술형 또는 수행평가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 미래형 인재는 다르다! <우등생보다 스마트 엘리트> 출간
https://goo.gl/SVmxY3

선다형으로만 출제하면 컴퓨터가 모두 채점하고 학생들의 이의제기도 상대적으로 덜하다.

하지만 학생 활동에 대한 정보는 많지 않다. 이 상태로 학교생활기록부를 기록해야 하니 또 고민이다. 수업 시간에는 문제풀이만 했고, 평가는 컴퓨터가 했다.

문제를 잘 푸는 학생들이야 그래도 기억 속에 있지만 대부분 아이들에 대한 기억은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자던 모습 밖에 없다. 쓸 말이 없다. 기록이 왜 필요하지 모르겠다. 학교생활기록부도 잡무가 된다.

이렇게 쓰다 보니 어디선가 많이 본 모습이다. 젊은 시절 내 모습이 겹친다. 그 시절에는 EBS 강사가 최고의 교사였다. 그렇게 흉내를 냈다. 심지어 수업 시간에 EBS강의를 틀어주고 교사들은 보충설명만 하면 됐다. ‘참 나쁜 교사’였다. 나는 나의 영역에서 벗어나지 않았고 아이들이 내 영역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그러니 관계가 온전할 리가 없었다.

그동안 교육현장은 동시에 일어나야 할 교육활동이 분절적으로 이루어졌다. 문제풀이식 수업도 그렇지만 오직 변별을 위한 평가도 온전한 모습은 아니었다. 아이들을 한 줄로 세우기 위한 평가는 맹목적인 암기식 공부 방법을 낳았고, 우리 아이들을 그저 책상 앞에 오래 앉아 있게만 만들기도 했다. 생각이 사라졌다. 이제는 그렇게 하지 말자는 것이 교육과정-수업-평가-기록의 일체화이다.

교사는 지식을 전달하는 자이기 이전에 ‘관계 맺는 자’이다.
아이들과 ‘관계 맺기’에서 교사의 교육활동이 시작된다. 그러나 단순히 관계만 맺으면 끝나는 직업이 아니다. 관계를 통해 성장을 이끌어내는 ‘성장 이끔이’의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럼에도 대학입시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학부모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다고 말하는 이들이 더러 있다.

고민성 선생님(저현고)은 수업에서 분명하게 일체화의 과정을 보여준다.

   
 

고 선생님은 성취기준을 중심으로 교육과정을 분석하고 재구성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수업모형을 설계한다. 평가는 수업시간 중에 하고 이를 학생부에 기록한다. 분절적인 교육활동을 이렇게 연결하는 것이 교육과정-수업-평가-기록의 일체화이다. 구슬을 실에 꿴 것이다.

일체화는 교실에서 새로운 ‘일’을 하자는 주장이 아니다.
그동안 교사들이 해왔던 ‘일’을 실에 꿰자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스펙(spec)을 주로 말했다. 이제 스토리(story)를 말한다. 하지만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갈 필요가 있다. 교사들은 삶을 디자인 하는 사람들이다. 아이들의 삶을 디자인하되 아이들 스스로 자기 삶을 살아가도록 이끌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래서 교사 입장에서 교육활동은 ‘플롯(plot)'으로 구성돼야 한다. 의도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비록 예측하지 못하는 결과가 나오더라도 수업을 디자인할 때는 의도가 있어야 한다.

스펙(spec)이란 ‘specification’을 줄여서 쓰는 말로 1. 명세 2. 사양 3. 규격 4. 설명서 5. 기준을 의미하나, 보편적으로 구직자 사이에서는 학력, 학점, 자격증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로 쓰인다. 스토리(story)는 어떤 사물이나 사건, 현상에 대해서 일정한 내용을 가지고 하는 말이다.

반면 교사들의 수업은 어떤 목적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수업을 디자인하는 방식은 하나의 플롯(plot), 즉 인과 관계에 따라 필연성 있게 엮는 방식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심하게 배려되어 학생들의 학업역량을 끌어올릴 수 있는 장치가 배치되어 있어야 한다.

일체화로 학교문화를 변하게 하기 위해서는 개별 학교에서는 학교 리더와 교사들 간의 상호 나눔이 필요하고 피드백이 있어야 한다. 정해진 연수 시간이 아니더라도 의자만 돌리면 교사들끼리 수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평가에 대해 고민할 수 있어야 한다.

학교 간 교류도 활발하게 일어나야 한다. 학교 간 교류는 교육청에서 주관해야 한다. 지역학교가 서로 만나는 날을 정해 교육과정, 수업, 평가, 기록에 대한 사례를 주고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외국의 사례처럼 ‘역량구축의 날(친구의 날)’을 만들어 지역의 모든 학교가 모여 서로의 교육활동을 교류해야 한다.

동시에 교육청에서는 전문코디네이터를 확보해 학교와 교사들을 도와야 한다. 교육과정, 수업, 평가, 기록을 포함한 학교 운영 전반에 걸쳐 경험이 많은 이를 확보하고 그들이 학교를 지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혁신을 제안하기는 쉽다. 실행하기는 어렵다. 지속하기는 매우 어렵다.’라는 말이 있다. 하나의 정책을 제안하기는 쉽다. 그리고 이를 현장에서 구현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문화로 정착하기까지의 과정은 더욱 더 어렵다. 교육과정-수업-평가-기록의 일체화는 정책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이는 학교의 문화이다. 문화로 정착이 되고 일상이 돼야 할 일이다.

 

*에듀진 기사 원문: http://www.eduj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4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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