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반 준비한 수능 내려놓는 고3의 속사정

   
▲ 한양대에서 실시한 ‘2018 수시상담카페’. 한양대는 자소서, 면접, 최저학력기준이 없는 '3無' 수시전형을 운영하고 있다. [사진 제공=한양대]

수시 원서 접수를 앞둔 현재, 돌연 수능 공부를 아예 내려놓는 학생들이 급격히 늘고 있다. 고등학교 1학년에 들어오면서 제일 먼저 떠올렸고, 바로 지난 학기까지 2년 반이라는 시간동안 가장 공들여 준비했을 수능이 이제 와서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본격적인 대입이 시작되면서 학생들이 ‘수능 포기’의 카드를 꺼내들 수 있었던 이유는 수시에서 수능을 취급하지 않는 대학과 전형이 무수하게 많고, 따라서 수능을 치르지 않고도 충분히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는 것을 이제야 숨을 쉬고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성숙됐기 때문이다.

물론 상위권 대학과 국립대의 학생부교과전형이나 의예과, 간호학과 등 인기학과에는 여전히 수능 최저기준이 적용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이 수시에서 지원하는 학생부종합전형, 지역인재전형에는 수능 최저기준이 없고, 수시의 학생부교과전형이라 할지라도 지방 하위권 대학은 수능 최저가 없다.

다시 말해 수능이 필요한 일부 학생들을 제외한 대다수 학생들은 수능 없이 대학에 진학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도 고교 현장에서는 이 같은 학생들을 분별없이 지도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저 과거부터 그랬듯이 전교생에게 입학과 함께 ‘수능’을 강요하는 수업을 되풀이하고 있고, 이에 맞춰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특히 수능과 오지선다형이 주류를 이루는 내신이 공부의 전부인양 지도하고 있는 것이 한국교육의 현주소다. 학교 공부의 핵심으로 여겨지는 내신은 수능의 선행학습처럼 굳어져버렸다. 게다가 학생들이나 학부모들 역시 EBS교재를 활용하는 문제풀이 수업을 더 선호한다. 고교 수업에서 정규 교과서보다 수능시험과 연계된 EBS 교재 활용도가 더 높다는 것은 두말 하면 잔소리다.

그러나 이 같이 수능대비를 위한 EBS 활용 수업이 유효한 학생은 일부뿐이다. 정작 최저기준 없이 수시로 진학을 할 학생들이 대다수인데도 학교는 수능의 허상을 쫓는 교육을 고집한다. 이렇게 1,2학년을 보낸 아이들은 3학년이 되어서야 수능을 맘 편히 버릴 수 있다.

정작 대입의 최전선인 고3에 도달한 학생들은 대학전형 탐색을 통해 구체적인 수시전략을 세워가며 수능 부담 없이 충분히 원하는 대학교에 진학이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한다. 상위권 학생들조차 학생부종합전형으로 상위권 대학을 지원하면서 수능 없이 대학가는 방법이 훨씬 수월하고 많다고 입을 모은다. 그리고 나서야 학교가 1학년 때부터 안겨준 수능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떨쳐낼 수 있는 것이다.

복자여고의 정명근 교사는 “2년 반이라는 시간동안 문제풀이 식 내신과 수능에 몰두하던 학생들이 돌연 수능을 내팽개치는 고3의 교실을 목격하며 지금까지 2년이 넘는 시간동안 학교는 도대체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쳤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하며 고교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 청소년 매거진 <톡톡> 정기구독 https://goo.gl/ug8hyx

실제로 이런 고교교육방식은 대학에서도 유효하지 않다. 대학들은 학생들의 수능 스킬은 점차 향상되는데 비해 학업 능력은 점점 떨어지고 있음을 대단히 우려한다. 대한민국 최고의 서울대 신입생 중 대학에서 수학 능력이 부족하다 판단되는 ‘기초 수준 미달’ 학생은 5년 새 2배나 늘었다.

학문적 난제를 마주하며 창의적으로 실마리를 찾고, 주도적으로 해결해가야 하는 ‘대학 수학 능력’이 암기 테스트로 점철된 현재의 수능과 내신 교육방식으로는 충족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A를 입력하면 B도, C도 생각해낼 수 있는 것이 인간의 뇌인데 우리의 교육은 A를 입력하면 반드시 A만을 출력해야 하는 사고회로를 강요하고 있다.

학생들 머릿속 ‘공부’의 정의는 오직 ‘내신 따기’일 뿐이다. 학원도 ‘내신 따기’를 위해 수강하고, 야간 자습도 ‘내신 따기’를 위해 신청한다. 공부 아닌 공부에 매달려 어른보다 치열한 밤을 보내는 것이 한국 학생의 현실이다. 또한 학교 역시 이것이 공부의 전부인양 지도하고 있다.

그러다 막상 대입 원서를 쓸 때가 되면 모든 학생들은 내신과 학생부 비교과만 가지고 수시 지원에 몰입한다. 수시에 수능 최저가 있더라도 말 그대로 최저 기준만 맞추면 되기 때문에 수포자, 영포자가 속출하는 것이 한국 교육의 실상이다.

교육의 실상이 이럴진대 누구하나 문제시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 또한 문제 중의 문제다. 진정한 교육에 대한 고민은 부재인 상태로 점수 따기만 강요하는 교육과 이에 익숙해진 학생들을 계속 외면한다면 교실의 황폐화는 물론이거니와 고교교육의 정상화 역시 지속적으로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

영어를 잘 하고 싶으면 EBS지문을 달달 외우는 것보다 영어로 된 영화를 한 편 보여주고 내용에 대해 토론도 해보고, 영화 대본을 사용해 시험도 보면 훨씬 영어를 잘 할 것이다. 한글로 보아도 어려운 경제, 사회, 과학 지문보다 차라리 쉬운 영어 동화책으로 내신을 출제했다면 지금보다 훨씬 학생들에게 영어책이 쉽게 다가갔을 것이다.

수능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현재 고3 교실은 고교교육의 부재를 실감케 한다. 오히려 1, 2학년 때 수능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고, 함께 책도 읽고, 토론도 하며 학생들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교실을 만들어줬다면 더 가치 있는 공부를 깊게 가르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우리 사회가 바라는 진정한 고교교육의 정상화가 아닐까.

 

   
▲ <나침반36.5도> 정기구독 http://goo.gl/bdBmXf
저작권자 © 에듀진 인터넷 교육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