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상 약화된 국가교육회의 출범..개혁 행보에 힘 실어야

   
▲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사진 출처=김상곤 부총리 페이스북]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누구보다도 개혁적인 인물이다. 그가 민선 1기, 2기 경기도 교육감을 맡아 혁신학교와 무상급식을 가장 먼저 도입하고 성공적으로 추진한 성과는 아직도 교사들에게 회자될 정도다. 그래서 김상곤 전 교육감이 교육부장관으로 임명됐을 때 교육개혁을 바라는 많은 교사들이 확신과 희망을 가졌다.

하지만 8월 10일 발표된 2021 수능개편 시안은 정부의 교육개혁 의지를 살펴볼 수 있는 첫 시험대로서, 만족할 만한 평가를 받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더 나아가 많은 교사들은 전국의 하천을 고인 물로 만든 4대강 사업처럼, 교육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더욱 고인 물로 만드는 주범이 될 것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수능 개편안, 누구를 위한 타협안인가
수능개편안이 파행적으로 발표될 것이란 예상은 이낙연 국무총리의 발언을 통해 어느 정도 짐작된 바였다. 이 총리는 8월 3일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수능 절대평가 전 과목 도입을 비판하고 나서 김 부총리를 난처하게 만들었다.

거기에 수능 절대평가를 두고 여론이 찬반양론으로 나뉜 채 극심한 갈등을 보이고 있어, 정부나 교육부 수장의 개혁 의지를 수능 개편안에 녹여내지 못하고 마지못해 이도 저도 아닌 타협안을 제시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이번 2021 수능 개편안에서 교육부가 내놓은 해결 방안은 두 가지이다. 1안은 수능시험 총 7과목 중 현재 절대평가로 치르는 영어와 국사에 추가로 통합사회·과학, 제2외국어/한문 과목을 더해 총 4과목만 절대평가로 치르는 것이다. 반면 2안은 국어, 수학, 탐구영역까지 더해 전체 7과목 모두를 절대평가 하겠다는 것이다. 교육부는 공청회 등을 거쳐 8월 말 최종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어느 안이 채택되든 현재 중3이 치를 2021학년도 수능부터는 영어, 한국사, 통합사회·과학, 제2외국어/한문 등 최소 4과목에서 절대평가가 이루어지며, 내년 고교 1학년 때부터는 문·이과 구분 없이 통합사회와 통합과학을 배우게 된다.

제2외국어도 절대평가로 치러져, ‘아랍어 쏠림 현상’ 같은 기형적인 교과 선택 문제는 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과학탐구 영역의 경우 Ⅱ과목을 출제 범위에서 제외해, 자연계 상위권 수험생들은 부담을 다소 덜 수 있게 됐다.

“1안 채택 시 융복합 시대 인재 양성, 학습 부담 완화 기대 물건너 갈 것”
하지만 문제는 1안으로 결정됐을 때 상대평가로 치르게 될 국어, 수학에 대한 학습 과중 현상이 심각해지고, 사교육 비중이 가장 높은 수학이 여전히 상대평가로 치러지면서 수학 사교육 전쟁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또한 1안의 경우 학생들은 탐구영역에서도 1과목을 기존처럼 상대평가 방식으로 치르게 된다. 인문·예체능계는 사회탐구 9과목 중 택 1, 자연계는 과학탐구 4과목 중 택 1, 특성화고교 출신자들은 직업탐구 단일과목을 선택하는 식이다. 따라서 국어, 수학뿐 아니라 탐구과목에도 사교육이 집중될 우려가 매우 높다.

거기다 이번 수능 개편안은 문·이과 융·복합이 어떤 식으로 반영될까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다시 말해 중학교 3학년 학생들부터 적용되는 2015 개정 교육과정 취지가 ‘문·이과 구분 없이 인문사회·과학기술 기초 소양을 지닌 융·복합형 인재 양성’에 있기 때문에, 2021학년도 수능시험에 문·이과 융합을 어떻게 적용시킬까에 관심이 집중됐었다. 특히 문·이과 융합의 대표 과목인 수학 영역을 가/나형 구분 없이 공통으로 출제할 것이라는 전망도 강하게 제기돼 왔다.

하지만 이번 수능 개편안은 이런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오히려 2015 개정 교육과정 취지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채 수능시험에 대한 부담만 가중시켰다는 비판이 높다. 즉, 문과생들에게는 통합과학에 대한 부담을, 이과생들에게는 통합사회에 대한 부담을 추가로 안겨주었다는 것이다.

또한 당초에는 2021학년도 수능시험부터 고등학교 1학년 때 배우는 공통 과목에서만 출제하는 방안도 검토돼, 수능시험을 2학년 때 보자는 논의가 이어져 왔었다. 그런데 이 역시 좌초되면서, 새로 도입하는 통합사회·과학 영역을 제외한 나머지 영역은 현행처럼 고등학교 2, 3학년 때 배우는 교과 범위 모두를 포함하게 됐다.

고교 내신 성취평가제 도입 전에 외고·자사고·국제고 폐지부터

   
▲ 학부모 필독서 '달라진 입시, 새판을 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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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개편안만큼 중요한 사항이 또 있다. 고교 내신 성취평가(절대평가)제 전면도입이다. 이번 개편안에는 고교 내신 성취평가제 실시 여부가 반드시 담겨있어야 했지만, 발표에서 빠져 심각한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고교 내신 성취평가제는 지금의 9등급 상대평가제를 5등급 절대평가제로 전환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런데 이 문제를 말하기 전에 반드시 선결해야 할 과제가 바로 외고·자사고·국제고 폐지다. 성취평가제 도입 여부는 외고, 자사고 폐지 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외고, 자사고 폐지를 못 박지 않고 5등급 성취평가제를 실시한다면, 내신 절대평가로 인해 외고와 자사고의 쏠림 현상이 가속화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외고와 자사고 학생들은 내신 상대평가 체제에서는 원점수 90점 이상을 받아도 3등급 이하 성적을 받았지만, 내신 절대평가가 이루어지면 같은 성적에 1등급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학생의 학업 활동과 비교과 활동 지원이 활발하고 면학 분위기가 조성돼 내신과 수능에서 모두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 있는 외고와 자사고 선호 현상이 극심해질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는 외고와 자사고 폐지를 주요 공약으로 해왔다. 외고·자사고·국제고는 5년 주기로 재지정 평가를 받는데, 전국 대부분의 학교가 2019년과 2020년에 재지정 평가를 앞두고 있다. 따라서 조속히 외고와 자사고 폐지 입장을 명확히 하고 시행령을 개정해 외고와 자사고 운영을 제한한 뒤, 재지정 평가 순서대로 외고와 자사고 지정을 취소하고 일반고로 전환하는 수순을 밟아야 한다.

박춘란 교육부 차관은 2018학년도 이후 고교 내신 평가 방법에 대해 “고교학점제 도입과 연계해 올해 안에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내신 성취평가제는 이미 2년 동안 유예돼왔기 때문에 다시 유예될 확률은 높지 않다. 교육계에서는 고교 내신 성취평가제 실시 발표에 앞서 시행령 개정을 통한 외고, 자사고 폐지 발표가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위상 약화된 국가교육회의, 교육개혁 진두지휘 가능할까
한편, 9월초 출범을 앞두고 있는 국가교육회의를 두고도 우려 섞인 전망이 나오고 있다.

국가교육회의는 중장기 교육정책 방향을 설정하고 정책 제안과 주요 정책·현안에 대한 심의·조정, 의견수렴을 하는 역할을 맡는다. 문재인 정부는 교육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대통령 직속으로 국가교육회의를 설치하고, 장기적으로는 중장기 교육정책을 논의할 독립기구인 국가교육위원회를 설치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교육부는 우선 문재인 정부 교육개혁의 로드맵을 수립할 국가교육회의 설치를 위해 8월 17일 대통령령(시행령)으로 '국가교육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규정' 제정안을 입법예고할 예정이라고 15일 밝혔다. 제정안이 다음달 5일 국무회의를 통과하면 공포 후 즉시 시행된다.

국가교육회의는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로, 의장을 포함해 21명의 위원으로 구성하는 민관합동 위원회이다. 정부에서는 교육부를 포함해 기획재정부, 고용노동부, 여성가족부, 보건복지부 등 5개 부처 장관이 참여한다. 대통령비서실 사회정책수석도 정부쪽 당연직 위원으로 참여한다.

나머지 15명은 민간위원이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장이 4년제 대학 대표로,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장이 전문대학 대표로,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장이 당연직 민간위원으로 참여한다. 다른 민간위원은 대통령이 민간전문가 중에서 위촉한다.

교육개혁 의지, 집권 초반 제대로 살려내야
그런데 당초 예상과 달리 국가교육회의 의장을 대통령이 아닌 민간전문가가 맡고, 교육부장관이 맡을 것으로 알려졌던 부의장직은 설치하지 않기로 한 것이 알려지면서, 교육개혁에 힘이 빠질 것을 염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통령과 교육부장관이 각각 의장과 부의장을 맡아야 교육개혁에 힘이 실릴 수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교육부장관이 교육부를 완전히 장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국가교육회의로 교육개혁의 키가 넘어간다면 관료사회를 제대로 통제할 수 없게 돼 교육개혁이 유야무야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수능 개편안에 절대평가제 방식이 1, 2안으로 나뉘어 실리고, 현재 1안 채택이 유력하게 점쳐지고 있는 상황인 것도, 정부의 교육개혁 의지가 교육부 전체에까지 미치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크다는 것이다.

특히 김 부총리는 외고·자사고·국제고 페지 문제에 대해 국가교육회의에서 추진방향을 논의하겠다고 밝혀왔다. 하지만 교육부가 교육개혁에 있어 퇴보하는 모양새를 보이고 국가교육회의마저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한다면 수능 전 과목 절대평가, 외고·자사고·국제고 폐지 등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려던 교육개혁 정책 모두가 브레이크 걸릴 위험이 크다.

2015 개정 교육과정의 취지는 일선 고교가 대입과 수능 준비의 부담에서 벗어나 창의적이고 다양한 교육을 펼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와 김 부총리는 집권 초반이기인 현 시점에 교육개혁 의지를 다시금 다잡아, 교육개혁 행보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 에듀진 기사 원문: http://www.eduj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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